벽골제는 저수지다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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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는 저수지다 -첫번째

GEOVR 0 32 09.2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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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는 저수지다.  <사진클릭 vr파노라마>


김제 벽골제는 한국 최고(最古)의 저수지와 그 제방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330(백제 비류왕 27)에 쌓았고, 790(원성왕 6)에 증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이후 벽골제는 고려·조선시대를 지나며 보수·중수되어 왔다. 1925년 간선수로로 이용하기 위한 벽골제 일대의 공사에서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다현재 벽골제는 사적 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 삼국사기에 벽골지(), 저수지로 적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흘해이사금 21(백제 비류왕 27, AD 330벽골지(碧骨池시개(始開)... 시축연도와 규모를 밝히고 있다삼국사기에 명백하게 지(), 저수지로 적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흘해 기축(329) 벽골제(碧骨堤시축(始築)... 제방의 길이벽골제의 수혜면적에 대해 적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원성왕 6(AD790)에 전주 등 7주의 사람들을 징발하여 증축했다는 기록은 신라 9주 중에 7주 사람들을 동원한 것으로 보아 전국적 규모의 토목공사였다고 할 수 있다저수지의 규모와 중요성이 대단히 컸다는 것을 알려 준다.

 

<2015년 2월 12일> 용골마을 지역에서 발굴 조사를 벌인 결과제방 동쪽 부분에서 보축 제방(補築 堤防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에 설치한 보강 시설성토층 아랫부분에서 제방 보강을 위해 진흙을 담아 쌓은 주머니’ 초낭(草囊혹은 토낭)을 확인하였다이 초낭은 나뭇가지앞사귀 등을 깔고 성벽제방의 흙을 튼튼하게 다져 쌓는 방식인 고대 부엽공법의 일종이다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7세기 전후의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원성왕 6(790)에 전주 등 7개 주(사람들에게 제방을 쌓게 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도 일치한다고 연구원 쪽은 설명했다초낭에서는 흙과 함께 볍씨복숭아씨가 출토됐으며아래층에서는 민물에 사는 한해살이 물풀인 마름도 발견돼벽골제가 과거 민물 저수지(淡水池)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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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부엽층 평면 및 단면 전경 >                                                                         <그림 2>  벽골제 축조기술 토낭

 
 고려시대벽골제 중수비문에 따르면 고려 현종 대(1010~1031)에는 옛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수준에서 수리를 하였고인종 21(1143)에는 기존의 것 보다 규모를 크게 보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인종 24년에 무당의 말을 듣고 애써 보수해 놓은 벽골제를 헐어 버렸다.

 

※ 저수지 아래 땅이 논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개국 초부터 수리시설 사업에 적극성을 보였다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8(1408)부터 벽골제 중수 시도하였고전라도 관찰사 박습의 상소문 내용에는 수문의 존재와 저수지 아래 땅의 면적이 저수지 안의 3배에 해당하는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태종 18년 우희열 상소문 수문이 다섯있어 1만여 경을 관개 할 수 있었습니다갑오년에 수축한 이후 둑 아래 넓은 들에는 화곡이 무르익어 이를 바라보면 구름과 같습니다.”  수문과 수로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시설임이 명백하고둑 아래가 논으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세종 2(1420) 전라도 관찰사의 계에서, 벽골제가 터져서 둑 아래 있는 전답 2098결을 결딴내었습니다.” 는 이미 둑 아래의 땅은 경지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벽골제 물을 논에 대기 위한 다섯 개의 도랑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수여거장생거중심거경장거유통거-

  

태종 15(1415)에 벽골제를 다시 고치고 그 중수 과정을 비석에 기록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의 중수비 항목에는 벽골제의 물을 끌어들여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다섯 개의 도랑 -수여거장생거중심거경장거유통거-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전형적인 저수지의 모습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각 수문에서 방출된 물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기술되어 있다. <그림 3>은 벽골제 중수 당시의 관개용 수로를 추정해 본 지도이고, <그림 4> 발굴조사 현황이다.

 

수여거와 유통거는 여수로였다수여거는 수월리(水月里) 1910년대 초 지도에는 수월리(水越里)로 표기되어있다이곳 사람들은 무네미 마을이라고 부른다수월이나 무네미(혹은 무너미)등의 모두 물이 넘어간다는 의미이다유통거의 위치는 1911년경 제작된 그림을 통해서 추정하면 <그림 5>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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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벽골제의 수원과 추정 관개용 수로

  (출처일제초기 조선의 농업허수열한길사)                                            <그림 4> 벽골제 발굴조사                                           <그림 5>   유통거 추정 위치

 
 

<2016.3.29.> '중심거'(中心渠)의 형태와 축조방법을 확인 (전북 김제 부량면 신용리 219-5번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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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6, 7, 8 > 중심거 수로 바닥



<2020.4.23.> 제 1수문 수여거에 대한 자료 확보를 위해 김제시 신덕동과 장화동 일대 '무네미'로 불리는 수문 추정지(수여거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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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9>  수여거 수로 노출                                              <그림 10>수여거 수로 바닥                                          <그림 11>  수여거 수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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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2>  수여거 도수로와 방수로                                                                       <그림  13>수여거 발굴 현장

 

다섯 개의 도랑의 기능에 근거하면일부 학자가 벽골제가 방조제 또는 저수답으로 벼베기가 끝나면 이듬해 모내기에 쓰려고 빗물을 가두어 두는 논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세종 2(1420)에 큰 홍수를 만나 무너지고 벽골제를 아주 없애 버리자고 전라 관찰사 장윤화가 건의하였다그 이듬해인 1421(세종 3)에 다시 수축하라고 명하였다(金賢熙·崔基燁, 1990). 1421년 이후 조선시대의 벽골제 관련 기사는 1680(숙종 6)에 세운 전교비, 1684(숙종 10)에 다시 세운 1415년의 중수비 기록이 있다. 그 후 벽골제는 모경과 저수답의 제방 구실을 하였다조선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에서 대부분 벽골제를 웅덩이처럼 그려져 있는데이것은 제방 붕괴 후 남겨진 저수지 일부를 표시한 것으로 짐작된다일제시대(1927)에는 운암저수지 물을 유역 변경시켜 광활간척지로 보내는 간선수로의 제방으로 바뀌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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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대동여지도(1861)에 표기된 벽골제와 그 주변                                       <그림 15> 1/5,000 수치지도에 표시한 벽골제 및 그 주변의 해발고도 6m 등고선 

                                                                                                                                                      (자료출처장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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